지난 27일, 오스카 시상식이 진행됐다. 시상식은 항상 다양한 이슈들을 불러오곤 하는데, 이번에는 윌스미스가 크리스락의 뺨을 때린 것이 가장 큰 이슈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윌스미스의 행동과 발언 직후 다들 놀라는 표정과 함께 약간은 숙연해진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사실 크리스락이 발언을 하고 있을 땐 전부 그저 웃고 있었다. 선을 넘는 말을 하는 것과 그 말을 참지 않고 화를 내는 것, 무엇이 시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일까? '어떤 것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건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지.
TPO란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를 뜻하며 주로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옷을 입으라는 말을 할 때 쓰이곤 한다. TPO는 1954년 론칭된 일본의 의류브랜드 VAN JACKET의 이시즈 켄스케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데,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선보이는 VAN JACKET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세분화된 서구 패션 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옷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키고자 '의복을 올바르게 입자'는 TPO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6년, KBS 연예대상 참석자가 정장이나 드레스가 아닌 티셔츠와 패딩, 운동화를 입고 온 것이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TPO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무식하고 TPO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의견과 함께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신선함', '추운 연말에 다 드러난 드레스를 입고 오는 배우들에게 베스트드레서상을 주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항상 청바지에 검은색 목티를 입고 큰 무대에 등장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다지 별일이 아닌 것 같다가도 스티브잡스라 그런 거 아닌가라는 굴레에 빠져버리게 되었고. 그냥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 TPO에 맞게 적절하게 입는 것, TPO에 맞게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도 다 좋고, 아니면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이 TPO가 되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합의를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사회 속에서 자리 잡고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필요하고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또한 다양하게 충돌하는 의견들이 어떻게 합의가 되어 정착되어나가야 할까? 옷뿐만이 아니라 행동이나 말 또한 TPO를 고려하여 살아가는 요즘.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만족감을 느끼며 적절하게 더불어 사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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