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데리다는 어떠한 가치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대립에서 사실 경계선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에 울타리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경계선이 가지고 있는 양가적 특성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중심부와 주변부의 가치가 같아지거나 역전되는 경우를 표현한다. 더하여 중심부와 주변부는 변증법을 통해 동일한 지위를 가지게 되며, 주변부에 대한 주변부의 주변부 또한 동일한 지위를 얻게 된다. 무한히 확장되는 주변부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이는 중심부만이 가치 있다는 관념을 깨버린다. 자크데리다의 해체사상은 이렇듯 경계선의 철학적 역할에 대해서 탐구한다.
예를 들어 예술작품과 액자의 대립에서, 칸트는 "작품의 예술성을 가리는 천박한 액자가 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 의하면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작품의 주변부인 액자가 중심부인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액자는 작품의 주변부에 있지만 동시에 그 작품과 더불어 있다. 액자 역시 작품의 일부분이며, 그 작품이 전시된 공간,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까지도 작품의 일부분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것이 작품이고 작품이 아닌지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브랜드의 권위를 해체시키는 것은 주변부의 위치한 유행이다. 이미 패션은 하이패션과 스트릿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위계질서의 전도가 일어나 해체되어가고 있으며, 유행은 브랜드의 의도보다 더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철학은 기존 중심부의 권위를 해체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 힘은 주변부에서만 위치하고 있어야 하는 한계점이 있다. 즉, 해체의 비판에 대항하고자 한다면 역으로 주변부에 있던 것을 중심부에 옮겨놓고 검증하면 된다.
올해 2월 이탈리아 브랜드 불가리와 젊은 세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 잔망루피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귀엽다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부자연스러운 단어 조합하기 대회 우승작', '에스콰이어 표지 모델한 라이언 보는 거 같네... 개별로라는 뜻', '불가리는 대체 왜 잔망 루피를 앰버서더로 선정한 걸까 문신육수 톰브라운과 고딩양아치패션 구찌가 부러웠던걸까'라는 반응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주변부에서부터 중심부로 이루어지는 해체작업은 중심부인 브랜드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심부인 브랜드가 앞으로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가성과 주변부, 경계선의 철학적 역할들에 사로잡혀버리지 않기 위한 밸런스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학생이 입으면 그 브랜드가 망한다.'라는 경계선의 철학적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일까? 아니면 그 주변부마저도 통제되어버리는 강력한 힘(아우라?)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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